2009년 마지막날 발행된 한겨레 esc 1면에 실린 "올해의 '빵꾸똥꾸'"란 제목의 기사를 보게 되었다.
나는 한 번도 〈지붕뚫고 하이킥〉이라는 시트콤을 본 적이 없다. 단지 얼마전 극중에서 사용하는 '빵꾸똥꾸'라는 용어때문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권고조치를 받았다는 소식을 접한 적은 있다. 처음에 이 단어를 들었을 때의 느낌은 참 해괴망측한 단어도 있구나였다. 그리고 흘려버렸던 빵꾸똥꾸를 한 기사를 통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esc에 실린 해석은 이렇다.
사랑해서 미워하고, 좋아해서 갖고 싶고, 그렇지만 미운 건 어쩔 수 없고, 그래도 어떻게든 옆에 두지 않으면 안 되는, '애증'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이 복잡다단한 감정을 정의할만한 적당한 말을 드디어 찾았다. '빵꾸똥꾸'다. 문화방송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의 해리는 사람들을 '친구'아니면 '빵꾸똥꾸'로 분류한다. 이름 모를 학교 친구들이 '친구'에 들어가긴 하는 것 같지만, 해리와 실질적인 인간관계의 범위에 있는 이들은 모조리 '빵꾸똥꾸'에 속한다. 해리와 대표적인 빵꾸똥꾸 신애의 관계를 보자. 해리는 신애를 싫어한다. 신애가 먹는 것을 다 빼앗는다. 그런데 신애가 없으면 심심하다. 가끔은 그립기도 하다. 신애가 없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신애에게 잘해주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빵꾸똥꾸를 그저 철없는 해리만의 분류법이라고 넘겼는데, 회가 지나면 지날수록 그 의미를 곱씹게 된다. 세상 모든 관계는 결국 빵꾸똥꾸로 귀결되며, 모두에게는 각자의 빵꾸똥꾸가있다는 것
이름 모를 학교 친구들은 '친구',
실질적 인간관계의 범위에 있는 이들은 모두 '빵꾸똥꾸',
이해 관계 밖의 사람들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나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과 함께 기쁨도 나누지만 반면 많은 갈등이 발생하는 것도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런 갈등의 순간에 해리가 불만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빵꾸똥꾸인가보다.
이렇게 보니, 흉악하게만 들리던 빵꾸똥꾸가 친숙하게 다가온다. 단순히 빵꾸똥꾸란 단어를 아무에게나 한다는 이유로 제제를 가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맥락을 봐야하지 않을까? 현실에서 애들이 어른들에게 저런 말을 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한나라당 뭐 의원이 라디오 방송에서 이 시트콤에 대해 이러저런 평을 했다고 하는데, 국회에서 해야할 일은 안 하고 싸움질이나 하고 막말해대는 당신들은 정상적인지 묻고 싶다.
- 책 쟁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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