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점심시간 아내는 결혼식에 가고 두 아들 녀석들과 함께 점심을 해결해야 합니다. 조리법에 나온 물의 양(개당 550ml)을 맞추고 끊입니다. 물이 끊을 동안 봉지를 개봉하고 스프와 면을 준비해 놓습니다. 물이 끊으면 건더기 스프와 분말 스프를 먼저 넣고 면을 넣은 다음 면발이 적당하게 익을 때까지 기다립니다. 큰 녀석이 계란을 싫어하여 계란은 넣지 않습니다. 면이 적당하게 익으면 식탁에 냄비를 올려놓고 덜어 먹을 그릇과 김치를 준비합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냄비 안에선 면은 익어갑니다. 라면의 조리법은 간단하여도 누가 끊이냐에 따라 그 맛이 미묘하게 차이가 납니다. 면발 익은 정도에 따라서도 참 다양한 맛이 연출됩니다. 어릴적에는 덜 익어 꼬들꼬들한 면발을 선호하다가 이제는 살짝 퍼져서 부드러운 식감을 주는 면발을 좋아하게 되더군요.
로도스에게 출간 한 <라면이 없었더라면>을 읽어보며 옛생각들이 떠 올랐습니다. 처음 라면을 끊이려고 하니 조리법에 나와 있는 물 550ml를 대체 어떻게 맞추어야 하는지 확신이 안서서 대충 물 맞추다가 때로는 짜게 때로는 너무 싱겁게 끊여서 맛이 없던 기억, 당시에는 석유 곤로에 취사를 하였는데 안에 심지가 있어 수명이 다하면 갈아 주어야 하는데 이거 갈때마다 손에 기름 범벅이 되었던 기억 등등... 별 기억이 다 납니다.
이렇게 간편하게 만들어 함께 나눌 수 있는 음식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라면은 그렇게 삶에 가깝게 우리의 사랑을 받으며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라면처럼 홀대받는 음식도 별로 없을 듯 합니다. 라면을 맛있게 먹는 우리들에게 어른들은 "한창 클 때 밥을 먹어야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셨지요. 그런 기억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던 듯 합니다. <라면이 없었더라면>을 읽다보면 모든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겪었던 라면에 대한 편견을 들을 수 있습니다.
삼양식품이 인스턴트 라면을 국내에서 생산하여 판매한지 5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입맛을 이토록 사로 잡은 식품도 많지 않은 듯 합니다. 이제 라면을 어엿한 우리 음식문화의 하나로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라면이 없었더라면 |
'독서 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둥의 신 토르와 북유럽 신화 (6) | 2014.06.03 |
---|---|
착시인 줄 알지만 속을 수 밖에 없는 (14) | 2014.03.17 |
치매에 걸린 연쇄살인범에 대한 이야기 -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4) | 2013.08.11 |
나는 지금 어디에 위치하는가 - 포지셔닝 (8) | 2013.07.18 |
어쩌면 잊고 싶은, 그러나 잊을 수 없는 기억 - 안녕, 내 모든 것 (14) | 2013.07.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