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박찬일 세프의 책 제목이기도 하고 EBS 다큐프라임 '맛이란 무엇인가' 2부 '맛의 기억'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그리워하는 맛의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대체 맛과 향은 무슨 이유로 우리의 감정과 기억에 깊은 영향을 주는 것일까요?

최근에 특별한 사연을 가진 벨기에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의 시사회가 한국에서 있었습니다. 감독의 이름은 융, 한국 이름은 전정식. 5살 때 벨기에로 입양된 융 감독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개봉하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5살에 입양 되어 한국어는 잊어버렸지만 젓가락질과 매운맛에 대한 기억은 잃지 않았습니다.

박찬일 세프는 어릴적 어머니와 함께 다니던 냉면집으로 시청자를 안내합니다.

입 한가득 냉면을 밀어 넣고 훌훌 넘기는 시원한 면의 목넘김이 박세프가 기억하는 맛의 추억입니다. 

아동문학가 고정욱 작가는 어릴적 먹던 분쇄한 생선, 분쇄육, 전분을 섞어 만든 소시지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합니다. 생활 수준이 올라가면서 요즘은 잘 찾지 않는 소시지를 지금까지 기억합니다.

애니매이션 <라따뚜이>에 등장하는 깐깐한 요리 비평가는 접시에 담겨온 음식을 입에 넣는 순간 어릴적 어머니가 해주었던 음식의 기억이 되살려 냅니다.

지브라 피쉬의 후각구를 연구한 결과, 냄새를 처리를 담당하는 후각구는 주로 성이나 위험을 감지하는 10~15%는 선천적으로 태어나고 나머지 80~90%의 개별 냄새를 감지하는 영역으로 세분화되어 경험과 학습에 의해 후천적으로 발달한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냄새 정보는 후천적으로 경험, 학습이 되는데, 우리가 냄새를 맞으면 후각으로 전달이 됩니다. 이는 뇌의 감정과 기억의 영역인 변연계와 맞닿아 있고 학습과 기억의 저장소 해마, 감정의 중추 편도체와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냄새는 상황에 대한 기억과 함께 저장 된다고 합니다.

어릴 시절 한 지점에서 저장되었던 맛과 향의 정보는 당시의 상황과 맞물려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는 것이죠.

다음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한 구절입니다.

`과자 부스러기와 섞인 그 따뜻한 액체가 내 입 안을 건드리자마자 온몸에 전율이 스쳤으며 나는 멈칫한 채 내게 일어나고 있는 그 놀라운 일에 정신을 집중했다. 미묘한 쾌감이 내 감각들에 밀려들었다. 무엇인가 고립되고 분리된, 그 기원을 알 수 없는 쾌감이. 그러자 문득 삶의 우여곡절들이 무연하게 느껴졌고 그 재난들은 별것이 아니며 그 덧없음은 착각인 것만 같았다.'


'머나먼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 사람들이 죽고 사물들이 부서지고 흩어진 후에도, 맛과 냄새만이, 연약하지만 끈질기게, 실체가 없으면서도 지속적으로, 충실하게, 오랫동안 남아 떠돈다. 마치 영혼들처럼, 기억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면서, 다른 모든 것이 부서진 가운데서, 그리고 그 사소하고 거의 만질 수도 없는 한 방울의 본질 가운데 회상의 방대한 구조를 견지한다.'


프루스트는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를 살다 간 소설가인데요. 프루스트는 향이 기억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향이 기억을 불러내는 현상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합니다.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에서도 프루스트 현상이 등장하는데요.

후각은 학습, 기억, 감정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 해마와 편도체 등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명현상과 관여한다. 강한 감정을 일으키는 냄새에 대한 기억은 오래도록 남는다. 이에 비해 뇌의 언어중추는 후각중추보다 훨씬 늦게 개발된 영역이다. 언어로 묘사되는 기억은 훨씬 시각적이고 이성적이지만, 냄새가 갖는 감성의 풍부함을 따를 수는 없다. 언어로 된 기억은 기록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오래 남겨두기 어렵지만, 냄새로 이루어진 기억은 작은 단서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회상할 수 있다.

향은 기억중추를 자극하여 우리를 시공을 초월한 더 아득한 과거 속으로 데려가곤 한다. 마치 오랜 세월 동안 덤불 속에 감춰져 있던 지뢰처럼 기억속에서 슬며시 폭발한다. 냄새의 뇌관을 건드리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낙엽 태우는 냄새는 군고구마를 먹었다는 단순한 사실만을 떠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어머니의 사랑을 받던 따스한 감정이 더 생생하다. 냄새의 효과는 순간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생각할 시간을 갖기도 전에 이미 감정을 자극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특정한 냄새를 인지했을 때 그 실체나 이유를 이해하기도 전에 알 수 없는 감정에 곧장 휘말리기도 하는 것이다.

이제 어른들이 옛 음식을 드시며 추억에 잠기는 것을 우리는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맛과 향의 기억은 생각보다 우리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으니까요.

다음 시간은 EBS 다큐프라임 3부 '맛의 교육'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jongamk.tistory.com BlogIcon 핑구야 날자 2014.09.04 08: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맛과 향에 있는 추억도 맛의 비밀이 아닐까요,,ㅋㅋ

  2. Favicon of http://yeogangyeoho.tistory.com BlogIcon 여강여호 2014.09.05 2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릴 적 섬에 살아서
    지금은 이름도 다 잊어버렸지만
    어머니가 갓 따온 해초를
    된장에 조물조물 무쳐 밥상에 올리셨던 맛이
    가끔 떠오르곤 합니다.

    • Favicon of http://yemundang.tistory.com BlogIcon 예문당 2014.09.11 1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강여호님의 맛의 추억은 해초이군요. 저도 해초 초로 간해서 새콤하게 무친 맛을 좋아하는데 가끔 백반집에서 나오면 맛있게 먹습니다. ^^

  3. BlogIcon 박진호 2014.09.12 1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찬일 쉐프님이 드신 냉면집 정말 궁금하네요.ㅎㅎㅎ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