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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문당 - 함께 만드는 책 놀이터
예문당 이야기

영화 <비긴어게인>으로 읽는 <감각·착각·환각>

by 예문당 2014. 12. 4.

이 글은 <감각·착각·환각> 2쇄 수정 작업을 하며 수정하려고 하였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채택하지 않은 원고입니다. 2014 세종도서 교양부분 수상 소식을 전하며 <감각·착각·환각>의 집필 의도에 대해 언급했던 그 내용입니다.

이 책은 결국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라는 책에 쓰인 “어떻게 복잡한 성분이 든 요리에서 전체적인 맛도 알고 부분적인 맛도 구분할 수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며, 앞으로도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다”라는 대목 때문에 쓴 책인 셈인데 그 책의 저자 ‘조나 레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어쩌면 쉬운 길을 두고 빙 돌아 왔는지도 모르겠다. 여러 가지 성분이 섞인 음식에서 어떻게 개별적인 성분의 맛도 느끼고 전체적인 맛도 느낄 수 있느냐의 질문은 여러 가지 소리가 섞인 음악에서 어떻게 개별적인 악기의 소리도 듣고 전체적인 소리도 들을 수 있느냐의 질문과 정확히 같기 때문이다.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 싱어송라이터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분)는 남자 친구의 변심에 상심하여 음악을 하는 옛 친구를 찾았다가 친구가 일하는 바에서 노래를 부르게 된다. ‘A step you can’t take’는 간단한 기타연주로 시작한다. 한 때 성공한 음반프로듀서였지만 해고통지를 받은 댄(마크 러팔로 분)은 우연히 들린 바에서 그레타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가능성을 발견한다. 노래를 듣고 있던 댄의 귀에 피아노, 드럼, 첼로, 바이올린 반주가 차례대로 그레타의 노래에 입혀진다.

모든 소리(음악)는 파동이다. 차 소리, 노래 소리, 악기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모두 단 한 줄의 이어진 파동이다. (a)그레타가 기타를 연주하는 부르는 노래에 (b)피아노 반주가 더하고 (c)드럼, 첼로, 바이올린 소리까지 더해진다. 각각의 소리로 시작되었지만 우리 귀에는 결국 (c)와 같은 하나의 파형으로 전달된다. 이 파형은 아날로그 혹은 디지털로 기록되어 음향기기로 재현된다. 이 하나의 파형으로 재현된 소리에서 우리는 다시 ‘A step you can’t take’라는 노래 전체를 들을 수도 있고, 그 노래 안의 사람의 목소리, 기타, 파아노, 드럼, 첼로, 바이올린 소리를 구분하여 들을 수도 있다. 이것이 너무나 쉽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이라 우리는 그것을 전혀 신비롭게 여지기 않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전체 소리를 들으면서 연주자 한명 한명의 소리도 따로 들을 수 있다고 하면 신기해한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런 신비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좀 더 확실한 차이만 구분하는 것이고 지휘자는 거의 비슷한 소리의 차이까지 구분할 수 있는  수준의 차이만 있는 것이다.


음식의 맛의 구분도 소리의 구분과 같은 원리다. 딸기 향 성분이 따로 있고 사과 향 성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만, 음악에서 전체적 소리를 듣고 각각 악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전체적 맛도 느끼고 개별적인 재료의 맛과 향을 따로 구분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구분의 능력의 배경도 미러뉴론 매칭 시스템이 설명한다. 1개의 파형에 따라 만든 스피커 소리에서 여러 악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뇌에서 스피커 소리에 맞추어 여러 악기의 소리를 만들어 추적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뇌에서 만들 수 있는 악기의 수만큼 구분하여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감각이 훈련한 만큼 좋아지는 배경도 감각기관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뇌의 흉내 내기와 통제력의 정교화인 셈이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댄의 귀에 들려온 노래 소리. 그 소리는 댄의 프로듀서적 본능을 일깨웁니다. 댄의 눈에는 악기들이 하나씩 살아나 곡에 풍성함을 더 합니다. 이 장면을 보고 '무슨 악기들이 스스로 연주를 할 수가 있지?'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댄의 머리 속에서 만들어지는 음악적 상상력을 화면으로 구체화 시킨 것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 중에 음악을 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종종 "음악 전체를 들어야 하는데, 악기 소리가 다 따로 들려서 괴로워"하며 툴툴대고는 하였죠.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에서 '숙련된 포도주 전문가는 원료로 쓰인 포도 품종과 생산 연도를 구분하지만 이것은 후각보다 훈련된 기억에 의지한다. 전문가의 강점은 후각 능력이 아니라 지적 능력에 있으며 이 전문적인 지적 능력은 체계적인 훈련에 달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전문가라 감탄하는 사람들은 일반인들보다 감각이 특별하게 뛰어나기 보다는 체계적인 훈련으로 지적 수준을 끌어 올림으로서 그러한 능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감각·착각·환각>이라는 책은 맛이라는 풀기 힘든 현상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시각과 뇌를 살펴봅니다. 우리가 어떠한 경로로 보고 느끼는가를 알수 있다면 맛이라는 현상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맛이라고 하면 입에서 느끼는 맛과 코에서 느끼는 향이 모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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