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를 처음 본 것은 중학교 시절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무슨 이야기인지도 잘 이해가 안 가는 <어린 왕자>를 읽고 <인간의 대지>까지 내리 읽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책 내용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막연하게나마 작가가 비행사로 일할 때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들이라는 것만은 떠오르네요.
세월은 흘러 25년이 지난 어느날, 한 도서 할인판매 행사장에서 <인간의 대지>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몇 권씩 묶음으로 파는 행사라 '다시 읽어 볼까'하는 생각에 다른 책들과 함께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새로 구입한 책을 다 읽고 나서 문득 생각나 책을 찾아보니, 예전에 읽었던 책도 본가에 있는 책장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왼쪽은 이번에 새로 구입한 2009년판 펭귄 클래식 <인간의 대지>, 오른쪽은 1986년판 범우 사르비아 문고 <인간의 대지>입니다. ^^;
25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난 <인간의 대지>는 사뭇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여전히 세세히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 많지만 저자가 이야기 하려고 하는 내용이 조금씩 가슴에 전해집니다. 예전에 읽었을 때는 그저 눈으로 읽었던 것이죠.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항공 기술이 열약하던 시절, 비행사로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경험을 한 작가의 이야기를 한 평범한 중학생이 단숨에 이해할 수 있다면 그 또한 평범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여행과 독서는 그런 면에서 닮은 듯 합니다. 처음 여행을 떠나면 유명하다는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증명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 같은 곳을 들리게 되었을 때 이전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느낍니다. 물론 자신의 안목이 그만큼 높아져 있어야겠죠.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이해가 안 되어 그냥 읽고 넘어갔던 부분이 어느날 다시 보았을 때, 갑자기 죽비소리처럼 '짝'하고 가슴 한구석을 일깨우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다독을 권하는 세상인지라 책을 한 번 읽고 나면 여간해서 다시 그 책을 들게 되는 일이 흔하지는 않을 듯 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온전한 일생이 담긴 그 글들이 몇 시간만의 독서로 온전히 자기 것이 되리라 기대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예전에 읽었던 책이 떠 오른다면 다시 한 번 들춰 보는 건 어떨까요?
- 책 쟁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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