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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이야기

'The King' 아놀드 파머, 영원히 잠들다

by 예문당 2016. 9. 26.

26일 골프의 전설 아놀드 파머가 고향 피츠버그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The King’ 아놀드 파머, ‘필드의 신사’ 영원히 잠들다…아놀드 파머 누구?[링크]

아놀드 파머를 미국 미디어에서는 'The King'이라고 부릅니다. 메이저 최다승을 올린 선수도 아니고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지도 못한 아놀드를 '킹'이라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950년대 중반 TV 전파를 타기 시작한 골프 중계는 당당한 체격의 호감형의 잘 생긴 아놀드를 집중적으로 대중에게 알렸고 TV의 영향력을 등에 업은 아놀드는 골프 르네상스 시대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인 매력과 시대를 함께 타고난 사람이라고 할까요?

골프는 그때까지만 해도 상류 스포츠로 여겨졌습니다. 평범한 중류가정 출신의 아놀드가 대담한 플레이로 우승을 거머쥐는 모습은 미국의 노동자와 중산층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아놀드를 보기 위해 골프장으로 몰려든 대중들, 이들 중에는 골프에 대해 문외한도 많았다고 하는군요. '아니의 군대(Arnie's Army)'라 불리운 그의 추종자들은 이전에 볼 수 없는 큰 규모였으며 아놀드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이처럼 아놀드는 골프를 메이저 스포츠로 만들었고, 그렇게 탄생한 '킹'은 오늘날까지도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파머는 4차례 마스터스를 제패했고, 메이저 대회 통산 7번 우승컵을 들어올렸습니다. 그러나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지 못해 끝내 그랜드슬램의 꿈을 달성하지 못했죠. 아놀드의 위대함은 그의 성적으로만 평가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아놀드는 대중들에게 받은 인기를 이용해 마크 맥코맥과 함께 스포츠 마케팅 시대를 활짝 연 장본인이기도 하죠. 맥코맥은 후에 세계 최대의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 IMG를 설립합니다. 아놀드는 골프 대중화의 선구자였으며 사회활동도 활발하였습니다.

아놀드의 플레이가 골프 역사상 그 누구보다 공격적이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그의 공격적인 골프가 골퍼로서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아놀드 본인은 공격적이라 우승을 놓친 대회도 있지만 공격적이라서 역전 우승한 대회도 많았다고 합니다. 자신은 성적으로만 평가 받는 골퍼보다는 플레이 과정으로 팬들을 즐겁게 해주고 사랑 받는 골퍼가 더 자랑스럽다고 여기는 선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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