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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 - 친절한 복희씨(박완서 소설집)

by 예문당 2011. 8. 26.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이 아니나, 독서토론회에 초대를 받아 숙제처럼 책을 한권 받았습니다. '친절한 복희씨'입니다.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입니다.

 
무심코 책장을 넘겨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첫장을 읽고 나서, 사실 이 책이 에세이인 줄 알았습니다. 유복한 노인의 이야기는 좀 낯설고 불편했거든요. 책을 다시 살펴보니, 이 책은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발표하신 단편소설 9편을 엮은 소설집이었습니다.

친절한 복희씨 차례

그리움을 위하여_현대문학, 2001년 2월호
그 남자네 집_문학과 사회, 2002년 여름호
마흔아홉 살_문학동네, 2003년 봄호
후남아, 밥 먹어라_창작과 비평, 2003년 여름호
거저나 마찬가지_문학과 사회, 2005년 봄호
촛불 밝힌 식탁_동아일보사, 2005년 4월
대범한 밥상_현대문학, 2006년 1월호
친절한 복희씨_창작과 비평, 2006년 봄호
그래도 해피 엔드_문학관 통권 32호, 한국현대문학관, 2006년 겨울

해설 험한 세상, 그리움으로 돌아가기_김병익
작가의 말 

 

9편의 단편소설 속에는 40-70대의 다양한 아줌마들의 삶이 녹아있습니다. 놀랍지만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이죠. 엄마 친구분들 수다 속에서 등장하는 이야기, 그저 듣고 흘려버릴 이야기들을 이렇게 세밀하게, 정교하게 글로 잘 표현되어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문학의 힘, 작가의 힘이겠지요.

책을 읽으며 여러번 책을 놓고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 그동안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릴 것 없이 살았음으로 내 마음이 얼마나 메말랐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40쪽, <친절한 복희씨> '그리움을 위하여' 중에서.. 


무척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저는 지금 무엇을 그리고 있을까요? 무엇을 그리며 지내고 계신가요? 가끔 옛생각을 하고, 옛사진을 볼 때 그리운 느낌이 들곤 하는데요, 저도 나이가 들면, 지금 아이들 키우며 아둥바둥 살고 있는 지금을 무척 그리워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만큼 지금 이 순간이 힘들지만, 저에게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이겠지요? ^^


저는 현재 35세 여자이기 때문에, 이 소설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이 현실로 와닿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부유한 노년의 이야기 속에서 그분들께서 바라보는 며느리들에 대한 이야기에 더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똑떨어지게 똑똑한 둘째며느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 (자식 넷이 돌아가며 매주 주말에 부모님께 방문하기로 둘째 며느리가 교통정리함)

"공일이 닷새 든 달도 있던데 그런 공일날엔 뭐 할 거냐. 네 집이 모여서 얼씨구 소풍이라도 가지 그러냐."
 
"어머님도 참, 우리도 스트레스 안 받는 날도 좀 있어야죠. 그게 그렇게 억울하시면 미국 있는 시누님을 다달이 부르시든지요."

요렇게 싸가지 없는 며늘년을 내가 아무리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시어미라 해도 어떻게 안 싫어하겠는가.


244-245쪽, <친절한 복희씨> 중에서.. 


이 대목에서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했습니다. 저도 뭔가 찔리는 것이 있어서 아닐까요? 싸가지있는 며느리가 되고 싶지만, 책의 표현대로 싸가지없는 며늘년이었던 때도 아마 많았을 것 같습니다. 어머님은 참고 용서를 해주셨겠지만요. ^^


9편 모두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로 들렸고, 어떤 이야기들은 곧 저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여자의 일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습니다. 결혼 후 아이 낳아서 열심히 키우고 아이들에게 손이 덜 갈 무렵, 부모님이 병수발을 해야하고, 그것이 끝나고 다시 손주를 키우고, 그것도 끝났는데 남편 병수발을 해야 한다면?? 기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아마 자연스럽게 거쳐가야할 이야기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독서토론회에 참여하였습니다.


지난달에 이어 두번째로 참가하게 된 자리인데요, 구청장님, 도서관장님, 30-60대 구민 여성 17명이 2시간 20분동안 이 책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30대는 책에 공감하거나 몰입하기 어려웠다는 평이 있었지만, 40-60대 분들은 자신의 이야기고, 깊게 공감한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어른들의 이해못할 행동들이 그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해가 가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구청장님께서는 진행을 잘 해주셨는데요, 독서토론의 목적은 '서로 다른 상황, 생각에 대한 이해'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토론을 하면서 많이 느꼈고, 이 자리가 무척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나이들어가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 좋겠다는 바램이 생기기도 했구요. 

이 책의 소설들은 박완서 선생님께서 70대에 발표하신 글들을 모은 것입니다. 노년 문학입니다. 저의 부모님께는 이미 다가온 노년이고, 저에게는 앞으로 다가올 노년이기도 합니다. 노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직 저에게는 생각으로 스쳐지나가는 노년이지만, 노년의 일상을 공유해보면 다르죠. 며칠 부모님댁에서 지내보아도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일상의 공유,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 같은데요,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고 무언가 공유하기 어렵다면, 이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금나래아트홀 박진순 도서관장님과 차성수 금천구청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금천구 도서관에서는 독서토론회에 대해 책 등 많은 지원을 해주고 계시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참여해보세요. ^^



친절한 복희씨 - 10점
박완서 지음/문학과지성사
2007년 10월 12일 초판 1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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