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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카터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Bang-Bang 사진가 클럽의 멤버로 1993년 수단으로 건너갑니다. 당시 수단은 10년 이상 이어진 가뭄으로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내전까지 발생하였습니다. 수단의 내전은 다른 아프리카 나라의 내전과 마찬가지로 종교와 종족 차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살던 땅에서 쫓겨나 소수민족으로 전락한 토착민들은 독립을 주장하였지만 정부는 들어주지 않고 무자비하게 진압하였습니다. 내전의 고통은 무고한 시민들의 몫이 되었죠. 살던 곳을 잃고 난민으로 떠돌게 됩니다. 케빈 카터는 내전의 실상과 기아의 심각성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수단은 작은 나라여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였습니다.

Ayod 마을에서 하루종일 촬영하느라 기진맥진한 상태로 덤불을 향해 가던 카터는 제대로 먹지 못하여 쇠약해진 한 어린 소녀가 힘겹게 구호 센터를 향해 기어가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 뒤에는 독수리 한 마리가 아이의 죽음을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카터는 질병때문에 희생자를 만지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합니다. 카터는 독수리가 포기하고 달아나기를 바라며 20분간 상황을 지켜보았고 결국 독수리를 쫓아내고 아이가 안전하게 센터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이야기하며 흐느꼈습니다. 

이때 찍은 사진은 뉴욕타임즈에 실렸고 국제사회의 관심이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로 돌리는데 기여합니다. 다음해인 1994년 카터는 퓰리처상을 수상합니다. 카터는 사진이 공개된 후 아이를 먼저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습니다. 비판은 날이 갈수록 거세어지고 극심한 심적 고통을 견디지 못한 카터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다. 이 사진은 그에게 큰 영광도 주었지만 수단에서 목격한 처참한 현실은 그에게 감당하기 힘든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만일 아이를 구하고 충분히 회복된 후에 아이를 찍었다면 사진이 그토록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을까요? 이 사진은 우리들로 하여금 보도사진의 역할을 생각해 보게 합니다. 

이번 이야기는 철저히 슬픈 결말로 마감합니다. 카터가 구한 아이 또한 14살에 말라리아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카터는 자신이 찍은 이 사진을 이렇게 평했다고 합니다. 

"이 사진은 지난 10년간 내가 찍은 사진 중에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나의 벽에 이 사진을 걸어 놓지 않았다. 나는 이 사진이 싫다"

한 장의 사진으로 돌아보는 근현대 세계 역사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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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jongamk.tistory.com BlogIcon 핑구야 날자 2017.08.08 08: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 한장이 많은 것을 말해 주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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