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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문당 - 함께 만드는 책 놀이터
출판 이야기

'가진다. 갖는다'라는 표현의 남용

by 예문당 2011. 12. 1.


2년전 출판에 몸 담으면서 출판인으로서 기본이라 생각하는 우리말의 쓰임을 알고 싶어 교정 교열 수업을 들었습니다. 몇몇 지인들에게 수소문해 보니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이수열 선생님의 강의를 추천해 주시더군요. 딱딱한 어문 규칙을 설명하는 지루한 수업이라 생각했는데 풍부한 예시와 실습을 위주로 하는 하는 수업은 저에게 우리말이 어떻게 잘못 사용되고 있는가를 느끼게 해주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단순히 기술로서 교정,교열이 아닌 우리말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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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hita21 Flikr>

간단히 국어 문법 설명 시간이 지나고 바로 우리가 잘 못 사용하고 있는 서술어의 설명으로 들어가는데, 처음으로 등장하는 서술어가 '가진다, 갖는다'입니다.

이수열 선생님은 영어 직역투로 쓰는 대표적 기형 서술어로 '가진다, 갖는다'를 꼽는데요. 선생님의 저서 본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원래 탐욕이 없고 평화를 사랑한 우리 조상은 스스로 천민(天民)으로 자부하고 이 세상 온갖 것은 하늘이 창조한 신성한 것이어서 함부로 차지할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끔찍이 여겨 자신에게 속한 것조차 '가졌다'고 하지 않고 '나는 아들 하나를 두었다', '내게 땅 마지기나 있다', '재산이 좀 있다', 돈푼이나 있었는데 다 없어졌다'고 하고,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크고 작은 모든 일은 '한다, 치른다'고 했다.
  이제는, 탐욕스럽고 싸우기를 좋아해서 세상 온갖 것을 다 차지해 (take) 가지기(have)를 즐기고, 가족이나 재산은 물론 정신으로 하는 온갖 행사도 갖고(have), 심지어 자연현상(눈, 비, 바람 등)까지 "We 'had' much rain last summer"라고 하는 족속들을 부러워하고 우러러보며 그 앞에서 아첨하여, 유구한 역사와 겨레의 얼이 깃들인 소중한 말을 쉰 떡처럼 버리고, 재산이 되는 물질뿐 아니라 아들딸을 '갖고', 잔치나 모임, 기자회견, 정상 회담, 입학식, 졸업식, 기념식, 준공식,직업, 지위, 벼슬자리, 권력 등 온 갖 것을 '갖는다'고 하면서, 탐나는 것을 갖기 위해서는 못하는 짓이 없는 속물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현암사 <우리말 바로 쓰기> 이수열 저. 37p

책에는 잘 못 사용하는 예와 그 바른 사용 예를 풍부하게 실었습니다. 몇가지 예를 들자면

●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대한민국 「헌법」제6조 제1항)
-> 국제 법규에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있다.

● 모든 국민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대한민국 「헌법」제14조)
     -> 모든 국민이 원하는 곳에서 살다가 이사할 자유가 있다.

여야 대표 모임을 갖고 현안 문제 타결할 예정(신문 기사 제목)
     -> 여야 대표가 만나서

● 의사들이 연극 공연을 갖는다.(1990. 9. 10 동아일보)
    -> 연극 공연을 한다.

● 남북 외무 장관이 첫 접촉을 가졌다.(1991. 10. 1 MBC 뉴스)
    -> 남북 외무 장관이 처음으로 만났다.

위와 같습니다. 

한 편집자가 얼마전 트윗에서 부쩍 내것, 내집이라는 표현이 늘었다는 트윗을 보면서 그동안 유지되었던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점점 희박해져 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면 비약이 심하다고 하실런지요? 남의 것을 무조건 배척하자는 주의는 아니지만 훌륭한 우리의 정신은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책 쟁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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